2024년 4월 총선을 기다리는 국민과 정치인들의 미래비전에 대한 희망과 심판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권자들은 정치집단들 또는 개인의 비장한 출사표와 좋은 전략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좋은 전략이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유는 아무리 훌륭한 작전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운영할 지휘관과 병력 그리고 병참물자 없이는 탁상 위의 승리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 들어 가장 훌륭한 선거전략은 모든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김대중 대통령의 1997년 대통령 선거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이끈 선거전략일 것이다. 그때 당시의 정치 상황은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역주의 정치 공학이 판을 치고 있었고 여기에 대항할만한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김대중은 자신과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김종필과의 연대를 통해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라는 큰 틀을 만들고 영남 역포위론이라는 전략을 수립하여 성공하게 된 것이다.
2002년의 대통령 선거 역시 김대중 세력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적 지역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영남공략을 위해 노무현을 발탁하여 이에 대한 작전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럼 이처럼 지역주의 정치 공학을 지향하면 무조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크나큰 우를 범하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공학적인 전략이 성공적인 요인이 분명하지만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출중한 무기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치러진 2012년 대선에서 실패하였으며 이후에도 박근혜 탄핵이라는 절대적 호기가 없었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인데 지금까지 그 전략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미 상대가 간파한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만을 요구하면서 영남의 견고한 보수진영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친노그룹이 활개를 치고, 친문이 당을 장악하고 이제는 친명이라는 세력이 당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4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것이 과연 국민의 욕구와 미래비전에 대한 해결책을 담아낼 수 있는 전략이 나올까?
기득권과 양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국민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희망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정당들과 다른 해법을 찾고 확실한 차별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작금의 여당도 3권분립에 의한 의회의 권한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요구하는 사항을 이행해야 하는 통법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면 이를 이행하지 않는 정치인은 배신자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는 홍위병식 정치는 계속해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이를 극복할 대체 세력의 출현과 무능과 무책임으로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야권의 변화와 변혁을 이끌어낼 무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이분법적인 정치에 물들어 왔고 이것밖에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의 3당 합당, 김대중의 DJP연합,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위대한 여정과 같은 역동성과 순환성을 왜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그것은 견고한 진영논리가 양측을 지배하고 있고 새로운 세력의 창출을 막아버리는 정치판이 있기에 그러하고 거대 양당정치에 대한 편견이 국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전략과 평범한 난이도를 가진 정치세력으로는 현 정치권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이분법적인 경계를 허물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이 생각하는 신당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정치를 표방하고 거대 양당이 해보지 않았던 정치를 하면서 새로운 전략, 전술을 펼치는 그러면서 생동감 있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인위적인 정계개편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국민이 갈망하는 대형 이벤트를 비롯하여 소소한 것일지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기존의 정치권이 표방하고 나섰던 유권자들에 대한 대응방식이 아닌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어우러지는 생활의 정치를 통해 내 삶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만들어주고 펼쳐가는 정치, 이것이 국민이 바라보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