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시무국가). 진주성 제2차 전투가 끝난 직후인 1593년 7월 16일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에 남긴 말이다.
이 말은 임진왜란 극복 과정에서 호남이 보여준 결정적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남지역이 전란에 대비하며 국방상 그만큼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호남이 적에게 유린당한다면 더는 전쟁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기에 이순신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군민들은 적극적으로 왜에게 대항하였다. 그 예로 1592년 7월 8일을 전후로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고개인 웅치에서 전주 부성을 공격하려는 왜군을 호남지역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펼쳐 왜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안덕원까지 진출하였던 왜군을 격퇴, 호남을 지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웅치전투가 있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전라도의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 시기 동안 전라도 지역으로부터 병력과 물자가 계속 조달 공급되어 조선이 장기 항전을 통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은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 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저항세력이 가장 두려워했던 무기 가운데 미군의 에이브람스 전차였다. 에이브람스 전차는 사막에서도 거침없는 기동력을 발휘하였고 치고 빠지는 이라크 저항 세력에게는 공포의 제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차도 미군이 철수하면서 이라크 신생 정부에 넘겨주었더니 게릴라 전술을 펴는 저항세력에 손쉽게 먹히는 사냥감이 되었다. 그것은 아무리 강력한 무기일지라도 장비를 운용하는 주체의 실력과 기술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국 정치를 보자. 민주당이 지난 19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한 박근혜 탄핵이 가져온 결과이며 보수진영의 분열로 얻은 것이었다. 선거 때가 되면 이유 불문하고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호남인들은 당시 민주당이 좋아서 준 것이 아니라 보수당이 싫어서 표를 준 것이었다.
과거 탁월한 리더십의 김대중과 호남은 강력한 전차와 군인과도 같은 함 몸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이후 성능 개선으로 노무현 정권의 탄생까지 이뤘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에이브람스와 같은 강력한 전차와 같은 무기를 받았지만 이후 노획한 병기처럼 호남을 대하였고 혁신과 단결을 외쳤지만 사실상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탄생에 기여하였고 헌정사에 처음 있었던 박근혜 탄핵과 보수진영의 분열로 문재인 정권을 얻었지만, 또다시 반복된 기득권 유지와 학벌, 인맥에 충실한 패권정치로 윤석열 정권을 만들어줬다.
2024년 4월이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온다. 거대 야당이라는 169석의 민주당은 아직도 호남인들을 주력부대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전략이 없는 가운데 상대 진영에 대한 나쁜 프레임만 걸친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을지 되새겨 봐야 한다. 혹여 선거에서 지고 나면 호남인들에 대해 주력부대, 주력전차가 성능이 나빠서,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서, 라고 비판을 할지 두렵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학벌과 인맥에 치우친 선수를 선발하려고 하지 말고 능력과 경쟁력이 뛰어난 선수를 선발하여야 한다. 본선 경쟁력이 없는 선수는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선수들에게 양보해야 호남인들도 민주당의 개혁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 지원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나 현재나 무능과 무책임이 극에 달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호남이라는 야권 최고의 무기와 주력전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운영할 실력이 없는데도,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서 다시 호남을 쓰려고만 한다면 호남의 정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호남인들은 이제 누군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절실하게 요구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양성하고 책임있는 리더십을 통하여 대한민국에 호남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아로새겨 주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통합을 위한 국가 비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할 국민의 대표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호남정치’가 복원될 것이며, 이순신 장군이 말한 “호남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는 비전을 갖춘 리더십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